
농장 시뮬레이터인 줄 알고 시작했다가 어느새 마을 영주 흉내를 내고 있었습니다. 벨라이트는 중세 배경의 생존·건설·전략이 결합된 오픈 월드 RPG로, 저는 친구 셋과 함께 플레이했는데 초반 두 시간은 그냥 흙 파고 나무 패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직접 겪어보니 이 게임의 진짜 얼굴은 한참 나중에 드러났습니다.
농장인 줄 알았는데, 전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몰랐습니다. 친구들이랑 각자 맡을 일 나눠 가지고 한 명은 나무 패고, 한 명은 돌 캐고, 저는 요리 담당이었는데 그 시간이 꽤 평화로웠거든요. 그런데 마을이 조금씩 커지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벨라이트에서 정착지 건설의 핵심은 단순한 자원 수집이 아니라 위협도(Threat Level) 관리에 있습니다. 여기서 위협도란 플레이어의 마을이 성장할수록 주변 산적과 도적 세력이 인식하는 적대 수치를 말하는데, 이 수치가 일정 이상 오르면 야간 기습 이벤트가 발생합니다. 저희가 딱 그 순간을 맞닥뜨렸을 때 친구 한 명이 "어? 얘네 왜 쳐들어와?"라고 했는데, 그게 게임이 진짜 시작되는 신호였습니다.
게임에서 NPC 주민을 영입하는 과정도 예상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마을 장로와의 친분도(Reputation) 시스템이 적용되는데, 이 친분도란 퀘스트 완료나 우호 행동을 통해 쌓이는 수치로 이게 높을수록 능력치 좋은 용병이나 노동자를 데려올 수 있습니다. 세 명이서 했는데도 "얘는 뭐 시키지", "이 친구는 나무 캐는 능력이 높네", "얘는 전투 스탯이 괜찮네" 하면서 분류하다 보면 벌써 머리가 아파집니다. 그런데 그 아픔이 묘하게 재밌습니다. 마을을 내가 직접 굴리는 느낌이랄까요.
실제로 게임 속 자동화 시스템은 꽤 잘 설계되어 있습니다. 광산 캠프나 벌목소에 주민을 배치해 두면 자원을 자동 수집한 뒤 비축 창고에 알아서 넣어 줍니다. 처음에는 이게 제대로 작동하나 의심했는데, 주민이 늘어날수록 진짜로 저는 할 일이 줄어들고 더 큰 전략에 집중하게 되더라고요. 그 구조 자체는 분명히 잘 만들어진 편입니다.
협동 플레이의 재미, 그리고 예상치 못한 혼돈
제가 이 게임을 혼자 했더라면 아마 중간에 껐을 것 같습니다. 친구 셋이서 같이 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고, 또 그 덕분에 진짜 웃긴 상황들도 경험했습니다.
협동 멀티플레이(Co-op Multiplayer) 지원 게임에서 이 구조가 얼마나 중요한지, 벨라이트를 해보면 확실히 느낍니다. Co-op Multiplayer란 두 명 이상의 플레이어가 같은 서버에서 동일한 목표를 향해 협력하는 방식으로, 역할 분담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수록 진행 효율이 올라가는 구조입니다. 실제로 저희는 퀘스트 담당, 전투 담당, 자원 관리 담당으로 비공식 분업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웃긴 건, 다른 마을에 퀘스트를 받으러 갔다가 마을 주민한테 맞는 상황이 생긴다는 겁니다. 처음엔 당황했는데, 알고 보니 해당 마을과의 친분도가 낮아서 벌어지는 일이었습니다. 저도 직접 겪어봤는데 그 마을이 나중에 우호 세력이 되면 오히려 쳐들어오는 도적을 같이 막아줘야 하는 의무 같은 것도 생깁니다. 그런데 막상 도적이 어디서 오는지 몰라서 마을 안에서 서성이다 끝난 적도 있었습니다. 세 명이서 각자 다른 방향으로 뛰면서 "거기냐?", "아니 여기다" 하던 게 지금도 생각납니다.
게임 내 협동 플레이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요소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역할 분담: 전투, 자원 수집, 퀘스트를 나눠 맡으면 진행 효율이 크게 올라갑니다.
- 주민 관리 분업: 노동자, 동료, 경비병으로 주민 유형을 나눠 배치하면 마을 운영이 수월해집니다.
- 긴급 방어 대응: 산적 기습 시 분대를 즉시 소집해 전투에 투입하는 빠른 판단이 필요합니다.
- 식량 보급 담당: 스태미나 유지를 위한 음식 관리를 전담하는 역할이 사실상 필수입니다.
협동 플레이 환경에서 RPG 게임의 몰입감이 얼마나 증폭될 수 있는지, 게임 연구 분야에서도 지속적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게임과 인터랙티브 미디어에 관한 연구를 주도하는 DiGRA(디지털 게임 연구 학회)에 따르면, 협동 구조를 가진 게임은 단독 플레이 게임 대비 지속 플레이 시간이 평균 40% 이상 높다고 보고된 바 있습니다
밸런스 패치가 절실한 이유
솔직히 이건 좀 예상 밖이었습니다. 게임이 재밌다는 건 인정하는데, 진행 속도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했습니다.
얼리 액세스(Early Access)란 게임이 정식 출시 전에 미완성 상태로 공개되어 플레이어가 먼저 경험하고 개발에 피드백을 주는 방식을 말합니다. 벨라이트도 현재 이 단계에 있으며, 그 미완성의 흔적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밸런스입니다. 제가 30시간 정도 플레이하고 나서 도달한 연구 단계가 겨우 2단계였는데, 다른 비슷한 장르 게임이라면 40시간 안에 3단계까지 마무리될 분량입니다.
스태미나(Stamina) 시스템도 문제입니다. 스태미나란 캐릭터가 달리거나 전투 행동을 취할 때 소모되는 체력 자원인데, 벨라이트에서는 이 소모 속도가 지나치게 빠릅니다. 조금만 뛰어도 게이지가 바닥나서 음식을 계속 챙겨야 하는데, 초반에 만들 수 있는 음식들은 지속 시간이 너무 짧고 부패 속도도 지나치게 빠릅니다. 저와 친구들이 하루 파밍 시간의 절반 이상을 허기 채우는 데 쏟아부은 날도 있었습니다. 그게 리얼리즘을 살리려는 의도인 건 이해하지만, 게임 흐름을 끊는 빈도가 너무 잦습니다.
이동 속도 문제도 빠질 수 없습니다. 월드를 탐험하다 보면 체감상 시속 3km 수준으로 걷는 느낌인데, 빠른 이동(Fast Travel) 기능이 있긴 합니다. 빠른 이동이란 도로 인접 지점에 표지판을 설치해 두면 해당 위치로 즉시 이동할 수 있는 기능인데, 문제는 동료 NPC는 이 기능을 함께 쓸 수 없어서 혼자만 순간이동한 뒤 동료가 걸어오다가 도적에게 맞아 죽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저도 실제로 당했습니다.
Steam의 얼리 액세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출시 초기 단계의 게임은 핵심 루프의 재미 검증에 집중하며 밸런스는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구조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벨라이트는 핵심 루프 자체의 재미는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단점들이 픽스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이 게임에 대한 기대는 아직 유효합니다.
결국 벨라이트는 지금 당장 완성도 높은 경험을 원하는 분께는 권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중세 반란 서사를 배경으로 정착지를 키워나가는 구조 자체가 맞는 분이라면, 그리고 친구 둘 셋과 함께할 수 있다면 충분히 해볼 만한 게임입니다. 밸런스 패치와 콘텐츠 추가가 이어진다면 분명히 달라질 게임으로 보입니다. 당장 사기 애매하다면 위시리스트에 넣어 두고 업데이트 흐름을 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노가다를 좋아하시면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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