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땅을 판다는 것만으로도 게임이 될까, 하고 반신반의하면서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마당에서 삽질이나 하는 게임이겠거니 싶었는데, 막상 해보니 예상과는 꽤 달랐습니다. 킬링타임용으로 잡았다가 어느 순간 배터리 관리하랴, 자원 팔아 장비 업그레이드하랴, 생각보다 많은 걸 신경 쓰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업그레이드 시스템과 자원 루프가 만드는 몰입감
처음 게임을 켰을 때 솔직히 당황했습니다. 삽 하나 들고 정원을 파기 시작하는데, 속도가 너무 느려서 "이거 언제 다 파지?"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제가 직접 해봤는데, 초반 10~15분은 진짜 답답함의 연속입니다. 그런데 자원 판매 수익으로 장비를 업그레이드하기 시작하는 순간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게임의 핵심 구조는 이른바 프로그레션 루프(Progression Loop)로 되어 있습니다. 프로그레션 루프란 캐릭터나 장비를 반복적으로 성장시키면서 더 어려운 구간에 접근할 수 있게 되는 순환 구조를 말합니다. 삽을 드릴로 바꾸고, 드릴의 배터리 용량을 늘리고, 나중에는 제트팩까지 달아 지상으로 한 번에 올라올 수 있게 됩니다. 이 성장 곡선이 꽤 잘 설계되어 있어서 "조금만 더 파면 다음 장비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반복적으로 생깁니다.
자원 수급과 관련해서 중요한 개념이 자원 관리(Resource Management)입니다. 자원 관리란 배터리 잔량, 보유 자원의 양, 지상 귀환 타이밍을 동시에 계산해서 최적의 효율로 채굴하는 행동 방식을 의미합니다. 배터리가 방전되면 그 순간까지 캔 자원을 모두 잃습니다. 제 경험상 이 긴장감이 게임을 단순 반복 노동에서 건져주는 핵심 요소였습니다.
지층이 깊어질수록 채취할 수 있는 광물의 등급도 달라집니다. 지표 근처에서는 돌과 철 수준이지만, 30m를 넘어가면 은과 금이, 50m를 넘어서면 다이아몬드급 광물까지 등장합니다. 여기서 게임 용어로 바이옴(Biome)이 바뀐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바이옴이란 같은 세계 안에서도 구역마다 등장하는 자원, 장애물, 분위기가 달라지는 구역 단위를 뜻합니다. 지층이 바뀔 때마다 레이더 탐지기를 써서 숨겨진 열쇠를 찾고 상자를 여는 소소한 재미도 있어서, 단순 채굴 이상의 탐험 감각을 줍니다.
이 게임의 장단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프로그레션 루프가 잘 설계되어 있어 업그레이드 동기가 지속적으로 유지됨
- 배터리 관리라는 제약이 긴장감을 만들어 단조로움을 줄여줌
- 지층별 바이옴 변화로 새로운 광물과 장애물이 등장해 탐험 감각을 유지함
- 물리 엔진이 다소 어색하고, 충돌 판정이 간혹 부자연스럽게 느껴짐
- 전체 플레이타임이 3~4시간 수준으로 짧은 편
보물 반전 엔딩과 게임이 숨긴 메시지
제가 이 게임에서 가장 예상 밖이었던 부분은 엔딩입니다. 100m 넘게 파 내려가 음산한 동굴에 도달했을 때, 솔직히 뭔가 엄청난 게 나올 거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보물 상자를 열어보니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거기다 거대 두더지 세 마리에게 쫓기다 죽는 것으로 게임이 끝납니다.
이 구조는 내러티브 디자인(Narrative Design) 관점에서 꽤 의도적으로 보입니다. 내러티브 디자인이란 게임의 스토리와 플레이 경험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메시지를 전달하는 설계 방식을 뜻합니다. 빈 보물 상자, 허위 광고, 두더지 마크가 그려진 트럭, 그리고 횟수를 세는 정체불명의 남자. 이 요소들이 조합되면 단순한 게임 오버 이상의 이야기를 암시합니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사람들을 두더지 동굴로 유인하고 있다는 설정입니다.
이 게임은 스팀(Steam) 인디 게임 플랫폼에 10달러 이하 가격으로 출시되어 있습니다. 인디 게임(Indie Game)이란 대형 퍼블리셔의 자본 없이 소규모 개발팀이 독립적으로 제작하고 배포하는 게임을 의미합니다. 이런 규모의 게임이 숨겨진 스토리 레이어를 품고 있다는 점은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일각에서는 진엔딩이 따로 있을 거라는 의견도 있지만, 키 두 개로 열리는 상자도 아이템만 나왔고, 땅을 전부 다 파본 경험을 가진 플레이어들도 추가 결말은 없었다고 전합니다.
제 생각엔 이 엔딩이 어쩌면 이 게임의 핵심 메시지일 수 있습니다. 자원만 팔아도 부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더 큰 보물을 향한 욕심이 결국 죽음으로 이어졌으니까요. 인디 게임 연구자들이 말하는 루도내러티브(Ludonarrative)의 좋은 사례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루도내러티브란 게임 플레이 방식 자체가 스토리의 메시지를 강화하는 설계를 가리킵니다. 실제로 게임 연구 분야에서는 이러한 구조적 스토리텔링이 플레이어의 감정 몰입도를 높이는 데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공포 게임 연구에서도 알 수 없는 위협이 존재하는 공간을 탐색하는 구조가 플레이어에게 가장 강한 긴장감을 유발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게임의 동굴 구간은 그 원리를 잘 활용했다고 봅니다. 제트팩도 삽도 안 통하는 구간에서 갑자기 거대 두더지가 등장하는 연출은, 짧지만 분명히 공포 경험으로 작동합니다.
이 게임이 맞는 사람은 다음과 같습니다.
- 복잡한 조작 없이 단순하게 즐기고 싶은데 약간의 긴장감도 원하는 경우
- 짧은 플레이타임 안에 시작부터 엔딩까지 완주하고 싶은 경우
- 인디 게임 특유의 실험적인 스토리 구조를 즐기는 경우
저렴한 가격에 3~4시간짜리 경험치고는 꽤 많은 걸 담고 있는 게임입니다. 물리 엔진의 어색함이나 반복 루프의 피로감은 분명히 있지만, 그걸 감안해도 엔딩의 반전이 주는 충격은 기억에 남습니다. 킬링타임 게임을 찾고 있다면, 그냥 한번 파 내려가 보시길 권합니다. 빈 보물 상자가 나올 때의 그 허탈함은, 직접 경험해봐야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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